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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와 스마트폰, 내가 기록하는 방식의 변화 1. 셔터 소리와 기다림의 미학20대 시절, 나는 중고로 산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불편함이 오히려 설레었다. 한 롤에 36장.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셔터를 누를 때마다 신중했다. "이 장면이 정말 기록할 가치가 있나?" 스스로에게 물었고, 확신이 서면 그제야 셔터를 눌렀다.한 롤을 다 찍고 현상소에 맡긴 뒤 며칠을 기다려야만 결과를 볼 수 있었다. 학교 앞 작은 사진관 아저씨는 늘 "3일 뒤에 오세요"라고 말했고, 나는 그 3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혹시 빛이 새어 들어가 전부 망친 건 아닐까, 초점이 나간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장면들이 담겨 있을지 상상하는 게 즐거웠다.사진이 나오는 날, 봉투를 열며 느끼던 두근거림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2025. 10. 7.
책 한 권의 위로 — 50대에 다시 읽는 고전이 주는 의미 1. 다시 책장을 펼쳤을 때, 달라진 문장들나이가 들수록 같은 책도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젊었을 땐 그저 멋진 문장으로만 스쳐 지나갔던 구절이, 지금은 내 마음의 오랜 상처에 다가와 위로를 건넨다.20대에 읽은 헤르만 헤세의 은 나에게 '성장'의 상징이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당위, 스스로를 깨뜨려 나가야 한다는 당찬 선언처럼 다가왔다. 그 시절 나는 책의 모든 문장을 미래를 향한 도전으로 읽었다. 뭔가 큰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 평범하게 살면 안 된다는 강박이 그 책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그런데 50대가 된 지금 다시 읽으니, 그것은 고독의 불가피함을 인정하는 고백으로 읽힌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문장은 .. 2025. 10. 7.
영화와 인생 2막 — 스크린에서 배운 '중년의 역할' 1. 나는 지금, 인생의 중간쯤에서 영화를 본다50대의 문턱을 넘으면서 영화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서사의 중심을 휘젓는 청춘의 속도에 마음이 먼저 가 있었다. 주인공의 사랑이 이뤄질지, 목표를 달성할지, 그 결말이 궁금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화면 한쪽에서 조용히 무게중심을 잡는 '중년의 역할'이 더 또렷해졌다.주인공에게 한마디 건네고 사라지는 조력자, 위기의 순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어른, 말없이 곁을 지키는 사람. 그들이 스쳐 지나가는 조연이 아니라, 사실은 이야기 전체를 떠받치는 힘이라는 걸 이제야 본다. 아마도 내가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일과 돌봄 사이를 오가며 그날의 체력을 헤아리고, 관계의 균형을 살피는 일이 일상이 된 지금, 나는 이야기 속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2025. 10. 6.
>드라마 속 세대 갈등, 나의 청춘과 마주하다 ― 과 시리즈를 보며 느낀 중년의 공감과 아쉬움1. 드라마 속에서 만난 나의 청춘늦은 밤, 혼자만의 시간에 드라마 을 보다가 화면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버지와 격하게 언쟁을 벌이고 집을 뛰쳐나오는 장면에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 순간, 스물다섯 살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하실 때마다 저는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살겠다"며 문을 꽝 닫고 나가곤 했거든요. 시리즈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88년 덕선이네 가족이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던 장면,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모습들. 그건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제 청춘 그 자체였습니다.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을 손에 쥐고 차례를 기다리던 기억, 친구 집 초인종을 누.. 2025. 10. 6.
7080 음악과 K-팝 :청춘 시절 노래와 BTS 세대 노래가 어떻게 다른 울림을 주는가 1. 7080 음악, 청춘의 위로였던 노래들저의 청춘은 7080 음악과 함께했습니다. 캠퍼스에서, 다방에서, 때로는 대학가 맥주집에서 흘러나오던 통기타 선율은 제 마음을 위로해주곤 했습니다.대학 시절 친구들과 자주 가던 음악감상실이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낡은 소파가 있었고, LP판이 빼곡히 꽂혀 있었죠.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신청하면, 주인 아저씨가 LP판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틀어주셨습니다. 낡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지만, 그 울림은 지금 어떤 고급 오디오보다 깊었습니다.김민기, 양희은, 한영애 같은 가수들의 목소리에는 시대의 아픔과 청춘의 순수가 담겨 있었습니다. 노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희망과 저항, 그리고 위로의 언어였습니다. 한영애의 「조율」 같은 곡은 묵직한 울림을 주었고, 양희.. 2025. 10. 5.
집은 재산인가, 삶의 공간인가-중년이 겪은 부동산 경험과 젊은 세대의 시선 차이 1. 중년에게 집은 곧 '재산'이었다저와 제 또래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재산' 그 자체였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월급은 그대로지만 집값은 오른다"는 말이 흔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이들이 몇 년 지나 큰 차익을 얻었습니다.결혼하고 처음 전세를 얻을 때가 생각납니다. 남편과 함께 중개사무소를 몇 군데나 돌아다녔죠. 좁고 낡은 아파트였지만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그때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전세 살다가 돈 모아서 꼭 내 집 장만해라.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그 말씀이 저희 부부에게는 일종의 사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았습니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옷.. 2025.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