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기록>과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느낀 중년의 공감과 아쉬움
1. 드라마 속에서 만난 나의 청춘
늦은 밤, 혼자만의 시간에 드라마 <청춘기록>을 보다가 화면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버지와 격하게 언쟁을 벌이고 집을 뛰쳐나오는 장면에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 순간, 스물다섯 살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하실 때마다 저는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살겠다"며 문을 꽝 닫고 나가곤 했거든요.
<응답하라> 시리즈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88년 덕선이네 가족이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던 장면,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모습들. 그건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제 청춘 그 자체였습니다.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을 손에 쥐고 차례를 기다리던 기억, 친구 집 초인종을 누르고 "놀러 왔어!" 외치던 그 시절. 드라마를 보며 저는 웃다가도 문득 코끝이 찡해지곤 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시던 장면들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표정 뒤에 숨겨진 깊은 애정, 어머니가 몰래 챙겨주시던 용돈. 그 시절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사랑의 언어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세대 갈등, 사랑의 다른 얼굴
스물다섯의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저는 쉰다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저는 어머니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청춘기록> 속 부모들의 마음이 이제는 너무나 잘 이해됩니다. 자식이 배우라는 불안정한 직업을 선택했을 때, 그 부모가 느꼈을 두려움. "내가 겪은 고생을 네가 또 겪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결국 잔소리로, 반대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지 못하고, 걱정되기 때문에 간섭하게 되는 것. 그것이 세대 갈등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습니다. 제가 청춘이던 1990년대와 지금의 2020년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그때는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안정적인 직장'이 행복의 공식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공식이 더 이상 정답이 아니게 되었지요. 제 아이 세대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유튜브로 돈을 벌고, SNS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 시대에, 제 경험만으로 아이의 삶을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3. 중년이 되어 비로소 깨닫는 것들
몇 년 전, 시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실에서 간병을 할때 시아버지는 불현듯 제 손을 꼭 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큰 애 너무 공부하라고 야단치지 마라. 니 남편도 내가 참 많이 야단쳤는데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때 내가 좀 더 믿어주고 지지 해줄껄 하고 후회가 된다. 큰 손주 하고 싶다는거 응원해 줘. 그럼 분명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해낼꺼야."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 역시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응원하는 엄마, 믿어주는 엄마.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늘 불안하고 험한 세상에 내어 놓기에 내 아이는 아직 내 손으로 챙겨줘야 할게 많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고 직장에서 동료들과 지혜롭게 잘 지내며 역할을 감당해 내는 아이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자식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봐 주는 것이라는 걸요.
<응답하라>에서 택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빠가 있잖아."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신뢰와 지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제는 압니다. 저도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4. 서로의 세상을 품는 지혜
요즘 저는 아이에게 제 청춘 시절 이야기를 자주 들려줍니다. 어떻게 어머니와 부딪혔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머니 마음을 알겠다는 이야기도요. 그러면 아이도 웃으며 말합니다. "엄마, 나도 나중에 그럴 것 같아요. 엄마 마음 이해 못 하다가, 나중에 부모가 되면 알게 될 것 같아요."
세대 갈등은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갈등 속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드라마를 보며 배운 가장 큰 지혜는, '기다림'의 힘이었습니다. 자식이 넘어져도 바로 일으켜 세우지 않고, 스스로 일어날 시간을 주는 것. 내 방식이 정답이라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자기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자, 중년이 된 제가 배워야 할 삶의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세상은 엄마가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네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줄게." 그 말이 아이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드라마는 끝이 나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됩니다. 세대와 세대 사이의 다리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것. 그것이 중년을 살아가는 제게 주어진 아름다운 숙제가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도 저는 아이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밥은 먹었니? 오늘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