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년에게 집은 곧 '재산'이었다
저와 제 또래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재산' 그 자체였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월급은 그대로지만 집값은 오른다"는 말이 흔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이들이 몇 년 지나 큰 차익을 얻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전세를 얻을 때가 생각납니다. 남편과 함께 중개사무소를 몇 군데나 돌아다녔죠. 좁고 낡은 아파트였지만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그때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전세 살다가 돈 모아서 꼭 내 집 장만해라.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그 말씀이 저희 부부에게는 일종의 사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았습니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옷도 세일 기간에만 샀습니다. 친구들 모임도 자주 나가지 못했죠. "집 장만해야지 뭐"라는 말로 모든 걸 참았습니다.
그 경험은 우리 세대의 의식을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집은 있어야지"였습니다. 전세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 부모님 역시 "내 집 하나는 있어야 사람답게 산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의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공간이 아니라, 노후를 책임져줄 보험이자 가족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척도였습니다.
2. 젊은 세대에게 집은 '삶의 무대'
반면 MZ세대에게 집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아이가 대학 졸업하고 취직했을 때, 제가 "이제 돈 모아서 집 마련 준비해야지"라고 했더니 아들은 이렇게 답하더군요. "엄마, 먼저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집 사는데 초점을 맞추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처음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요즘 집값을 보니 아이 말이 맞더라고요. 제가 20대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올랐습니다. 저희가 첫 아파트를 샀을 때 가격이면 지금은 화장실밖에 못 살 것 같았습니다.
대신 이들은 '어떤 집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더 집중합니다.
주거 형태도 다양합니다. 아이 친구 중에는 쉐어하우스에서 사는 친구도 있고, 한 달 단위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사는 친구도 있답니다. 제 또래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다들 "그게 말이 되냐"며 놀라지만, 젊은 친구들은 그걸 오히려 자유롭다고 생각하더군요.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회사 막내 직원은 월세로 살면서 남는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집 사느라 청춘을 다 바치고 싶지 않아요. 지금 경험하고 즐기는 게 더 중요해요"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요즘은 그 마음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3. 세대 차이의 뿌리, 다른 경제 환경
이 인식 차이는 결국 시대가 만든 결과입니다.
중년 세대는 상대적으로 낮은 집값, 고도성장기, 부동산 투자 성공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집=재산'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았죠. 저만 해도 첫 아파트를 사고 몇 년 만에 집값이 올라서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이 있으니 자녀들에게도 "집은 꼭 사야 해"라고 강조하게 됩니다.
젊은 세대는 급등한 집값, 불안정한 일자리,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집=삶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죠. 집을 사려면 부모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현실에서, 차라리 지금 행복하게 사는 데 돈을 쓰겠다는 겁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모임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요즘 애들은 집도 안 사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20대였을 때와 지금 20대가 살아가는 세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중년 세대는 '내 집은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관념을 당연시했지만, 젊은 세대는 '집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유연성을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철없음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 방식입니다.
4. 함께 찾아야 할 길, 집의 두 얼굴
그렇다면 집은 결국 재산일까요, 아니면 삶의 공간일까요? 저는 이제 둘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집이 재산이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있습니다. 노후를 대비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 또래 친구 중에 집이 없어서 노후에 전세금 반환 문제로 고생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나이 들어서 집 걱정하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집이 삶의 공간이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집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될 때, 정작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의 행복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도 집 장만하느라 20-30대를 너무 각박하게 산 것 같아요. 친구들과 여행도 못 가고, 취미 생활도 포기했죠.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요즘은 저도 집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오래된 소파를 바꾸고, 베란다에 식물도 키우고, 거실 벽에 가족사진도 걸었습니다. "이 집이 재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공간이기도 하구나" 싶더라고요.
중년 세대가 부동산을 '안정된 재산'으로 여겼던 지혜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동시에 젊은 세대가 강조하는 '나답게 사는 집'이라는 철학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재산으로서의 집과, 삶의 무대로서의 집을 조화시키는 지혜가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제 아이에게는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해서 집 살 필요는 없어. 하지만 천천히라도 네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해두렴. 동시에 지금 네가 사는 공간도 소중히 여기고." 집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니까요.
5.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은 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안정된 재산으로서 꼭 마련해야 할 필수 자산일까요?
- 아니면 내 삶을 표현하는 무대이자 유동적인 공간일까요?
- 혹시 집 때문에 겪은 고민이나 경험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솔직한 경험과 생각을 댓글로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세대 간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작은 다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재산도 챙기되 삶의 행복도 놓치지 않는, 그런 지혜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