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59 냄새로 기억되는 영화들 — 향기·비 냄새·담배연기가 남긴 서사의 흔적 이미지의 예술이라 불리는 영화는 사실 ‘후각의 예술’을 꿈꾼다. 화면 밖으로 흘러나올 수 없는 냄새를 어떻게 관객의 뇌 속에서 불러낼 것인가. 그래서 어떤 영화는 과일 향, 비 냄새, 분장 냄새, 담배연기 같은 감각적 단서를 세심히 배치해 장면을 ‘기억의 서랍’으로 만든다. 아래 네 편은 후각적 기억이 어떻게 사랑·정체성·권력·추억을 움직이는지 보여준다.1. 여름 과수원의 향, 첫사랑의 온도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북이탈리아의 한 여름, 17세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아버지의 조교로 온 올리버(아미 해머)를 만난다. 이 영화는 풍광만으로도 향을 떠올리게 한다. 잘 익은 복숭아와 살구, 호수의 물비린내, 뜨거운 돌길과 젖은 수건의 냄새까지—냄새의 기억은 곧 계절의 기억이고, 계절의 기억은 .. 2025. 11. 7. 기억이 고장 난 영화 속 인물들 — 상실·왜곡·선택적 회상으로 굴러가는 이야기 기억은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의 증거다. 그래서 기억이 고장 나면, 사람은 먼저 스스로를 의심한다. 어떤 영화는 이 균열을 단지 장치로 쓰지 않고, 인물의 윤리와 관계의 무게를 드러내는 서사의 엔진으로 삼는다. 여기 세 편—〈메멘토〉,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통해 기억이 어떻게 사랑과 진실, 그리고 자기를 밀어 올리는지 살펴본다.1. 〈메멘토〉— “나는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남자레너드 셸비(가이 피어스)는 전향성 기억상실로 새 기억을 만들지 못한다. 그는 폴라로이드 사진과 손글씨 메모, 그리고 피부 위의 문신을 외부 하드디스크처럼 사용한다. 영화는 흑백(정방향)과 컬러(역방향) 시퀀스를 교차해 관객에게도 같은 혼란을 체험시키는데, 그 결과 레너드의 확.. 2025. 11. 6. 집이라는 감옥, 혹은 피난처” — 가족·관계·공간심리학으로 읽는 네 편의 영화 집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장소다. 벽은 보호막이면서도 경계이고, 문은 안락함의 상징이면서도 감금의 장치가 된다. 영화는 그 미묘한 경계를 통해 인간이 공간에 기대는 방식과, 공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그려왔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집’을 심리적 무대로 삼은 네 편—《행복한 라짜로》, 《도어락》, 《침입자》, 《디 아더스》—를 중심으로, 가족과 관계, 그리고 공간의 권력 구조를 탐색해 본다.1. 봉건의 벽과 순수의 거울 — 행복한 라짜로 (2018)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이 작품은 현실과 신화를 교차시키며 ‘공간의 착취’를 보여준다. ‘인비올라타’라는 이름의 고립된 농장에서 귀족 마르케사 알폰시나 데 루나(니콜레타 브라스키)는 농민들을 속여 노예처럼 부린다. 주인공 라짜로(아드리.. 2025. 11. 6. 스크린 속 스크린 — 영화 안에서 또 영화를 찍는 이야기 메타영화(“영화-안-영화”)는 카메라를 관객 쪽으로 살짝 돌려, 창작의 과정과 현실의 균열을 동시에 비춘다. 이 글은 한국·미국·글로벌 합작 세 작품을 골라, 감독의 시선이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메타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비교한다. 〈여배우들〉은 즉흥과 자의식을, 〈버드맨〉은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드라마월드〉는 장르의 법칙을 뒤집어 ‘현실감’을 만들어낸다.1.〈여배우들(Actresses, 2009)〉 — “진짜”를 연기하는 방법감독 이재용은 크리스마스이브 화보 촬영 현장을 무대로 여섯 배우—윤여정·이미숙·고현정·최지우·김민희·김옥빈—을 한자리에 앉힌다. 흥미로운 점은 모두가 ‘배우 ○○’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배역을 맡기기보다, 실제 배우가 자기 자신을 연기하도록 장치한다. 대본을 최.. 2025. 11. 5. 유령이 주인공인 영화들 — 사라졌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선 존재 어떤 작품들은 ‘없는 존재’로 이야기를 굴린다. 화면에 나타나는 유령이든, 말로만 전해지는 망자이든, 혹은 거대한 ‘부재’ 자체이든—사라진 존재는 남겨진 사람들의 말과 선택을 바꾸고, 세계의 규칙까지 다시 쓰게 만든다. 아래 다섯 편은 한국·미국·일본을 넘나들며, 유령이 어떻게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물 이름과 배우, 장면의 호흡을 따라가며 ‘부재의 서사’를 해부해본다.1.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 — 식스 센스(1999)심리치료사 말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소년 콜 시어(헤일리 조엘 오스먼트)를 만난다. 엘리베이터의 흔들림, 욕실의 냉기, 문틈의 그림자—콜의 세계는 “감각으로 먼저” 움직인다.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I see dead peopl.. 2025. 11. 5. 대사가 없는 영화 — 침묵으로 말한 장면들 영화는 말보다 먼저 움직인다. 인물이 숨을 고르고, 프레임이 멈추고, 소리가 사라질 때 무엇이 남는가. 어떤 작품은 침묵 자체를 언어로 삼아 인물의 결심·두려움·사랑을 오롯이 전달한다. 아래 다섯 편은 ‘거의’ 혹은 ‘완전히’ 말이 비워진 순간이 이야기를 어떻게 밀어 올리는지, 배우·주인공·정확한 한 줄을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어 따라가 본 기록이다.1. 소리 없는 공포, 손으로 나눈 문장 — A Quiet Place (2018)애벗 가족은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에블린(에밀리 블런트)과 리(존 크래신스키), 리건(밀리센트 시몬즈)은 수화를 일상 언어로 바꾸고, 모래길을 깔아 발자국의 소음을 줄이며, 보드게임 말까지 천으로 바꾼다. 말 대신 손짓과 눈빛이 장면을 이어 붙이는 동.. 2025. 11. 4. 이전 1 2 3 4 5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