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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일과 삶, 90년대 직장 문화와의 다른 길

by bombitai 2025. 10. 4.

직장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

 

1. 90년대 직장 문화, '회사=인생'의 시대

저는 90년대 초반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직장 문화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첫 출근 날, 선배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팀장님보다 먼저 퇴근하는 거 아니야. 알았지?"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일했으니까요.

'야근=충성'이라는 공식이 있었습니다. 밤 10시까지 사무실 불이 켜져 있어야 상사 눈에 띄었고,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은 결례였습니다. 금요일 저녁 회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죠. 결혼 초에 남편이 "회사 끝나면 일찍 들어와"라고 했지만, 회식을 빠질 순 없었습니다.

'종신고용의 믿음'도 있었습니다. 회사에 몸 바치면 은퇴까지 보장받을 거라는 믿음. 신입사원 연수 때 인사팀장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회사의 가족입니다. 평생 함께 갈 겁니다." 그 말을 믿었습니다.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이었습니다. 내 의견이나 삶보다 조직의 목표가 먼저였습니다. 가족보다 회사가 우선이라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던 시절입니다. 특히 워킹맘이었던 저는 아이를 돌보느라 일찍 가거나 휴가를 쓰면 눈치가 보였습니다. "역시 애 엄마는 헌신이 부족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더 악착같이 일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숨 막히는 문화였지만, 동시에 '안정'이라는 이름의 보상도 있었습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꾸준히 승진을 기대하며 "내 자리는 지켜진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그 확신이 우리를 버티게 했습니다.

2. MZ세대의 직장관, '일은 삶의 일부일 뿐'

반면 오늘날 MZ세대는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입사한 지 불과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남직원이 육아휴직을 냈습니다. 출산한 아내를 위해 아이를 본다구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그들의 핵심 가치입니다. 야근보다는 퇴근 후 삶을 중시합니다. 회사가 아닌 나 자신을 중심에 둡니다. 우리 팀의 한 MZ세대 후배는 칼퇴근으로 유명합니다. 정시가 되면 어김없이 가방을 챙깁니다. 처음엔 '저게 뭐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 친구가 퇴근 후 요가 수업을 한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팀장님, 저한테는 제 시간이 더 소중해요"라고 하더군요.

N잡 트렌드도 낯섭니다. 직장 하나에 인생을 맡기지 않고, 블로그·온라인 강의·프리랜스 프로젝트 등 다양한 수입원을 시도합니다. "회사 월급만으로는 불안해서요. 제가 좋아하는 일로 수입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

재택근무나 유연근무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도 신기합니다.

이들은 "회사는 내 삶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90년대식 사고로는 '회사를 대충 다니는 건가?' 싶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을 더 주도적으로 설계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회사를 '평생 직장'이 아닌 '성장을 위한 정거장' 정도로 봅니다.

3. 세대 차이의 뿌리, 다른 시대의 경험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답은 세대가 겪은 시대 환경에 있습니다.

90년대는 고도 성장기였습니다. '회사만 붙잡으면 안정된 미래'라는 믿음이 통했습니다. 선배들이 20-30년 한 회사에서 일하며 집도 사고 자녀도 대학 보내는 걸 봤습니다. 그게 정상이었고,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믿었죠. 제 친구 중에는 한 회사에서 30년을 근무하고 임원까지 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는 달랐습니다. IMF가 터지면서 평생직장 신화가 무너졌습니다. 금융위기 때도, 팬데믹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죠. MZ세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회사는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다'는 불안을 체득한 겁니다.

즉, 중년 세대가 '회사에 의지'했다면, MZ세대는 '회사에 기대지 않는다'고 배운 겁니다. 이는 단순한 철없음이 아니라, 시대가 준 생존 전략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달라진 겁니다.

4. 중년이 배울 수 있는 지점, 그리고 역할

저 역시 처음엔 MZ세대의 태도가 낯설었습니다. 회의 중 "이건 제 워라밸에 맞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속으로는 '요즘 애들은 배짱도 좋네' 싶었지요. 화도 났습니다. '우린 이렇게 고생하며 회사를 키웠는데, 너희는 편한 것만 찾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에는 우리가 놓쳤던 삶의 균형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 어릴 때 함께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퇴근하면 지쳐서 저녁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씻기고 재우기에 급급했죠. 주말에도 밀린 집안일 하느라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의 성장을 곁에서 천천히 지켜보지 못한 게 가장 큰 후회입니다. MZ세대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거였습니다.

중년 세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비교가 아니라 다리 놓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자율' 속에서 배울 점을 찾고, 우리의 '경험' 속에서 전해줄 지혜를 찾는 것.

예를 들어, 부업을 하는 후배들에게는 "수입 다변화는 좋지만, 무리하면 본업에 지장 가니까 속도 조절 잘해"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다. 저는 한 후배에게 제 경험을 얘기해줬습니다. "나도 예전에 부업 하다가 몸이 안 좋아진 적 있어. 건강이 먼저야." 반대로 우리는 그들에게 "퇴근 후 삶도 소중하다"는 사실, 일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습니다.

5.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직장 문화

결국 중요한 건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MZ세대는 중년의 경험에서 위기 대응력과 현실 감각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불경기가 왔을 때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조직 내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이 무엇인지, 장기적 관점에서 경력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이런 건 경험 없이는 배우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중년은 MZ세대의 자율성과 유연함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 다양한 수입원을 만드는 법,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법. 이런 것들이 앞으로는 더 중요해질 테니까요.

앞으로의 직장 문화는 90년대처럼 '희생'을 강요하지도, 2020년대처럼 '개인만'을 강조하지도 않는 균형 잡힌 형태가 되어야 할 겁니다. 조직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도 존중받는, 책임을 다하되 무리한 헌신을 강요하지 않는 문화 말입니다. 특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90년대 직장 문화, 그리움이 남으시나요?
  • 아니면 MZ세대의 일과 삶 방식이 더 현명하다고 보시나요?
  • 혹시 세대 차이로 겪은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솔직한 생각을 댓글로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비난이 아닌 이해로, 갈등이 아닌 배움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이 공간이 진정한 세대 간 소통의 장이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함께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