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간 저의 하루는 온통 다른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 출근 준비, 아이들 등교 준비, 하루 종일 가족을 위한 일들로 정신없이 보내고, 잠들기 전까지도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지냈어요. 그런 생활이 당연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남편이 은퇴하면서 갑자기 텅 빈 시간들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어요. 누군가를 챙겨야 할 대상이 없으니 허전하기도 했고, 온종일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기도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나만의 시간'이라는 것을요.
이제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진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가고 있어요. 거창한 취미나 특별한 활동이 아니더라도, 작고 소소한 것들에서 찾는 행복이 이렇게 달콤할 줄 몰랐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저 자신과 다시 만나는 기쁨, 그것이 바로 50대에 찾은 새로운 행복의 모습입니다.
1.조용한 아침의 특별함
가장 먼저 발견한 나만의 행복은 조용한 아침 시간이었어요. 예전에는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기 전에 부엌에서 부산하게 아침 준비를 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온전히 제 것이 되었습니다. 새벽 6시쯤 눈을 뜨면 집안이 고요하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이 하루의 시작을 알려줘요.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것입니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 뜨거운 물이 필터를 통과하며 내려지는 소리, 그리고 방 안에 퍼지는 커피 향까지,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작은 의식처럼 느껴져요. 예전에는 인스턴트커피로 대충 때웠는데, 이제는 이 시간 자체를 즐기기 위해 조금 번거롭더라도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 마셔요.
따뜻한 커피를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정말 소중해요.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보는 것도 즐겁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 그런 바쁜 일상에서 벗어났구나' 하는 여유로움을 느끼기도 해요.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요즘에는 아침 시간에 나만의 작은 메모를 써요. 어제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일들을 적기도 해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은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자", "점심에는 파스타를 해먹어보자" 같은 소소한 것들이에요. 이런 작은 계획들을 세우고 하나씩 실행해가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실해지더라고요.
가끔은 아침 시간에 스트레칭이나 간단한 명상을 해봐요.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어젯밤 잠들면서 뭉쳤던 근육들을 풀어주고, 깊게 숨을 쉬면서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해요. 이런 시간을 갖고 나면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2.작은 취미들의 큰 기쁨
두 번째로 발견한 행복은 작은 취미들에서 오는 성취감이었어요. 젊었을 때는 시간이 없어서, 아이들 키울 때는 여유가 없어서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독서였어요. 예전에는 아이들 교육서나 생활정보 관련 책들만 읽었는데, 이제는 정말 제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있어요. 소설, 에세이, 여행기, 요리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어보니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요즘은 신간이 빨리 나와서 전자책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이 정말 행복해요.
요리도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어요. 그동안은 가족들 입맛에 맞춰서 익숙한 메뉴들만 반복해서 만들었는데, 이제는 제가 먹고 싶은 음식, 도전해보고 싶은 요리들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어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고, 새로운 재료를 사와서 실험해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실패해도 혼자 먹는 거라 부담이 없고, 성공하면 혼자만의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취미들의 공통점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긴다는 것이에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제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라 부담이 없어요. 잘하지 못해도 괜찮고, 중간에 그만둬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니 오히려 더 즐거워요.
3.혼자만의 시간 즐기기
세 번째 행복은 혼자 있는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게 된 것이에요.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요.
혼자서 영화 보기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가족들과 함께 볼 때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장르를 선택해야 했는데, 이제는 정말 제가 보고 싶은 영화들을 마음껏 볼 수 있어요. 로맨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어요. 감동적인 장면에서 혼자 눈물 흘리고, 재미있는 부분에서 혼자 웃어도 부끄럽지 않아요.
혼자 하는 산책도 특별한 즐거움이에요. 남편과 함께 하는 산책도 좋지만, 혼자 하는 산책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제 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걷기도 하고, 예쁜 풍경이 보이면 오래 멈춰서 바라보기도 해요. 길에서 만나는 강아지들과 잠시 놀아주거나, 예쁜 카페에 혼자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도 생겼어요.
혼자 쇼핑하는 것도 즐거워요. 예전에는 효율적으로 필요한 것만 사고 빨리 나오려고 했는데, 이제는 천천히 둘러보면서 쇼핑 자체를 즐겨요. 꼭 뭔가를 사지 않더라도 새로운 상품들을 구경하고, 예쁜 소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가끔 마음에 드는 작은 선물을 저 자신에게 사주기도 해요.
혼자서 음악 듣기도 새로운 취미가 되었어요. 젊었을 때 좋아했던 음악들을 다시 들어보기도 하고, 요즘 나오는 새로운 음악들도 찾아서 들어봐요. 헤드폰을 끼고 누워서 음악에 푹 빠져있는 시간이 정말 행복해요. 음악을 들으면서 예전 추억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사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기도 해요.
4.나 자신과의 새로운 만남
마지막으로 발견한 가장 큰 행복은 저 자신과 다시 친해진다는 것이었어요. 오랫동안 엄마, 아내의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다시 저를 알아가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예전에는 항상 가족들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제 감정은 뒤로 미뤘는데, 이제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기쁨을 느끼고 어떤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제 페이스를 찾는 것도 큰 변화예요. 그동안은 다른 사람들의 스케줄에 맞춰서 바쁘게 살았는데, 이제는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다 보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요.
새로운 꿈들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언젠가는 작은 카페를 운영해보고 싶다든지, 드럼을 치며 공연을 한다든지,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와보고 싶다든지 하는 소망들이요.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있는 것을 더 이상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저 혼자만의 시간이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저와 대화하고, 저를 돌보고, 저를 사랑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행복도 있지만, 혼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평안함과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행복이 거창한 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조용한 아침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책 한 권, 예쁘게 핀 화분의 꽃, 혼자 듣는 음악 한 곡... 이런 작은 것들에서 오는 기쁨이 때로는 큰 이벤트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행복을 주더라고요.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시간 속에서 진짜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시간도 소중했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도 충분히 가질 자격이 있어요. 작고 소소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