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창시절,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때
10대, 20대에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다. 매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놀고, 밤새 전화통화를 하며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세상에서 소외된 기분이었고,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하면 마음이 무너졌다.
그때는 친구를 많이 아는 것이 인기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나 아는 사람이 있고, 전화번호부가 빼곡한 것이 자랑이었다. 주말마다 약속이 있는 것이 행복의 조건 같았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밀도, 고민도, 꿈도 함께 나누는 것이 우정의 증거라고 여겼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으면 갈등이 생길까봐 무조건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친구관계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평생 지속되는 우정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2. 20대 후반, 첫 번째 변화의 물결
20대 후반이 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각자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면서 만날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처럼 매일 만날 수도 없고, 밤새 수다를 떨 여유도 없어졌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서운했다. '친구들이 나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닐까?',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 생기면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친구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다른 영역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시기에 진짜 친구와 그냥 아는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진짜 친구는 자주 만나지 못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3. 30대, 결혼과 함께 온 또 다른 변화
30대에 들어서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시작했다. 결혼식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모습이 예전과는 달랐다. 각자의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 살림에 대한 걱정,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미혼인 친구들과 기혼인 친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대화 주제도 다르고, 생활 패턴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즉흥적으로 만나기도 어려워졌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기도 힘들어졌다.
그때는 이런 변화가 아쉬웠다. 결혼하면 친구들과 멀어진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이해하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이 생기면서 시간과 에너지의 배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시기에 깨달은 것은, 친구관계도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처럼 자주 못 만나도 서로를 이해해주는 것, 그것이 성숙한 우정의 모습이었다.
4. 40대, 아이들과 함께 바뀐 우선순위
40대가 되면서 아이들이 생기자 친구관계는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는 일상에서 친구들과의 시간은 사치가 되었다. 전화 한 통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과는 육아라는 공통 관심사로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없는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다. 대화 주제도 달라지고, 시간을 내기도 힘들어졌다.
이때 많은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졌다. 의도적으로 멀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연락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죄책감도 들고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각자의 인생 단계에 맞는 우선순위가 있고, 그것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5. 50대, 진짜 친구들과의 재회
50대에 들어서면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다시 친구들과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동창회, 결혼식, 장례식 등에서 만난 오랜 친구들. 세월이 흘러 모두 변했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였다. 함께 웃고, 함께 추억을 나누는 것이 여전히 자연스러웠다.
이때 깨달았다. 진짜 친구는 시간이 흘러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그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을. 서로의 인생이 바뀌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는 것을.
젊을 때 수십 명이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몇 명의 친구들과의 관계는 예전보다 더 깊고 진실하다.
6. 나이 들어 알게 된 친구의 진짜 의미
50대가 되어서야 친구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친구는 많은 것을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이다.
진짜 친구는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조언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성공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실패했을 때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짜 친구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진 것처럼 편안하고, 서로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준다. 과거의 추억도 소중하지만, 현재의 모습도 그대로 사랑해준다.
진짜 친구는 서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7. 친구관계의 계절들
돌이켜보니 친구관계에도 사계절이 있었다.
학창시절은 봄이었다. 새로운 만남들로 가득하고,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렜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20대는 여름이었다. 뜨겁고 열정적인 우정들이 꽃피웠다. 밤새 이야기하고, 함께 꿈을 꾸며,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30-40대는 가을이었다. 많은 관계들이 정리되고, 진짜 소중한 것들만 남게 되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관계들이 익어갔다.
50대는 겨울인 것 같다. 수는 적어졌지만,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욱 단단하고 따뜻하다.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관계.
8. 지금 친구관계로 고민하는 당신에게
지금 친구들과 멀어져서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인생의 각 단계마다 다른 종류의 관계가 필요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친구가 적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질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한 명의 친구가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친구관계도 애써서 유지하려고 하지 마라. 억지로 만들어진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가 진짜 우정이다.
그리고 기억해라. 진짜 친구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연락하지 못하는 오랜 친구가 있다면, 용기 내어 안부 인사를 건네보라. 진짜 친구라면 분명 반가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