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 나면 “회사 내 얘기 맞네”가 절로 나오는 직장 공감 리스트. 화려한 사무실부터 형광등 아래 큐빅, 매장에서 튀겨지는 기름 냄새와 법정의 건조한 공기까지—다섯 작품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당신의 출근길을 위로한다.
1. 야망과 생존의 직조—The Devil Wears Prada (2006)
모두가 선망하는 패션지 ‘런웨이’. 하지만 안디 색스(앤 해서웨이)는 막 들어온 순간부터 벽에 부딪힌다. 상사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그게 다야(That’s all.)”라는 차가운 작별로 회의를 끝내고, 옆자리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는 “A million girls would kill for this job.”이라며 현실을 못 박는다. ‘꿈의 직장’은 동시에 자기효능감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링이다. 안디가 나이젤(스탠리 투치)의 도움을 받아 외형을 바꾸는 장면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조직의 언어와 리듬을 학습해 들어가는 의식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직장인에게 유효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맞는가’와 ‘일이 맞는가’를 구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란다는 괴물이라기보다 생태계의 규칙 그 자체다. 결국 안디가 택한 것은 사표가 아니라, ‘나는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새 답이다.
2. 형광등 아래의 슬로버닝—Office Space (1999)
프로그램 회사 ‘이니텍’의 회색 큐빅. 피터(론 리빙스턴)는 매일 ‘TPS 보고서’ 표지 붙이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빌 럼버그(게리 콜)의 얄미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나온다. “I’m gonna need you to go ahead and come in tomorrow… so if you could be here around 9, that would be great, mmm-kay?” 그리고 또박또박, “If you could just go ahead and make sure you do that from now on, that would be great.” 직장인이 평정심을 잃는 순간을 이렇게 정확히 포착한 영화가 있었나. 이 작품은 화려한 반전 대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왜 달콤한지 설득한다. 하지만 진짜 포인트는 회피가 아니라 주도성이다. 피터가 구조적인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매일 필요한 작은 반란—회의에서 한 문장 더 정확히 말하기, 불필요한 보고를 줄이는 합리화—의 모델이 된다. ‘대단한 혁명’이 아닌, ‘일상적 개선’의 힘. 그래서 지금 다시 보면 더 웃기고 더 쓰다.
3. 세대가 다른 멘토링—The Intern (2015)
주얼스(앤 해서웨이)가 이끄는 패션 이커머스 회사에,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 니로)이 합류한다. 번아웃 직전의 리더와, 느리지만 정확한 호흡을 가진 베테랑. “You’re never wrong to do the right thing.” 벤의 이 한마디는 유행이 없다. 그는 칼같은 팁을 주지 않는다. 대신 야근하는 직원의 책상 위에 정돈된 메모를 남기고, 운전 기사가 늦으면 직접 핸들을 잡는다. 주얼스가 일·가정·평판의 3중 압력 속에서 흔들릴 때, 벤은 판단 대신 배려로 공간을 정리한다. 영화는 ‘스펙’과 ‘연식’이 아니라 ‘작업의 품위’를 보여준다. 이메일 앞머리의 인사 한 줄, 프린트물의 스테이플 방향, 회의가 끝난 뒤 의자를 제자리로 밀어 넣는 사소함까지—모든 디테일이 팀의 신뢰 자본을 쌓는다. 직장에서의 성장은 성과표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내 곁에서 평정을 유지시켜 주는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4. 소상공인의 땀 냄새—극한직업 (2019)
마약반 해체 위기의 형사팀이 잠복을 위해 치킨집을 연다. 그런데 소문이 터진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가게는 대박이 나고, 팀은 범죄보다 주문과 튀김기와의 사투에 더 쪼들린다. 고반장(류승룡)이 뒤엉킨 주방을 보며 넋을 잃는 장면은, 숫자·문서·고객 민원 사이에서 밀려오는 ‘현장’의 파도를 보는 듯하다. 업무의 본질과 생존의 조건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조직은 방향감각을 잃는다. 영화는 이 모순을 ‘웃음’으로 밀어붙이면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를 가볍게 소비하지 않는다. 배달 봉투 하나에 적힌 “오늘도 파이팅” 같은 문장이 왜 눈시울을 적시는지—현장에서 버티는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더 공감된다. 야근과 손목통증,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장사의 진심. 웃으며 보다가도, 퇴근길에 치킨집 불빛이 이상하게 따뜻해 보일 것이다.
5. 다름으로 완성되는 팀—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022)
로펌 한바다에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들어온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회의실의 공기는 어색해지지만, 곧 팀은 이 문장을 ‘다름을 설명하는 친절’로 이해한다. 우영우는 디테일의 천재다. 계약서에서 다른 모두가 지나친 콤마 하나를 집어내고, 법정에서 상식으로 덮인 편견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는 때로 소음과 시선에 지치지만, 동료 최수연(하윤경), 권민우(주종혁)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조직은 ‘배려’가 동정이 아니라 생산성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직장 문화에서 특히 실무적이다. 회의 시간·조명·문서 작성 포맷—작은 환경 개선이 구성원의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성과는 결국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다루는가’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