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뜨거운 사랑에서 따뜻한 동반자로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과 나. 신혼 때는 하루라도 떨어져 있기 힘들었고,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랐다. 서로의 모든 것이 궁금했고, 작은 표정 변화에도 민감했다. 그때는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뜨거움은 점점 식어갔다. 아이들을 키우고, 각자의 일에 바쁘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치이다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저 한집에 사는 룸메이트가 된 것 같았다. 대화는 아이들과 집안일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50대에 들어서면서 깨달았다. 사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이었다. 더 이상 가슴 뛰게 하는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되는 사랑.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사랑.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더 깊고 안전한 사랑이었다.
2. 완벽함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젊었을 때는 남편의 모든 것을 바꾸고 싶었다. 이런 습관도 고치고, 저런 성격도 바꾸고 싶었다. 나 역시 남편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이려고 애썼다.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굳이 바뀔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남편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 사람만의 특색이었고, 나의 모자란 부분들도 그냥 내 모습의 일부였다.
지금은 남편이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놓는 것도, TV 소리를 크게 틀어놓는 것도 그냥 웃어넘긴다. 대신 그가 매일 아침 커피를 타주는 것, 내가 아플 때 조용히 약을 챙겨주는 것에 더 집중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주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년 부부의 사랑이다.
3. 격정에서 배려로
신혼 때는 사랑을 크게 표현하려고 애썼다. 깜짝 선물, 로맨틱한 데이트, 달달한 말들. 그런 것들이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기념일마다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거창한 것들보다 작은 배려들이 더 소중하다.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고 연락해줄 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줄 때,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주물러줄 때. 이런 작은 것들이 사랑이구나 싶다.
"사랑해"라는 말보다는 "고생했어", "괜찮아?"라는 말이 더 자주 오간다. 화려한 꽃다발보다는 내가 아플 때 끓여준 미역국이 더 감동적이다. 사랑의 모습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4. 혼자만의 시간을 인정하기
젊었을 때는 부부가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취미도, 친구도, 관심사도 공유해야 하고,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면 서운했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중년이 되어서는 알게 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각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남편은 혼자 낚시를 가고, 나는 친구들과 등산을 간다. 서로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취미를 즐긴다.
이제는 남편이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온다고 해도 기다려준다. 나 역시 내 친구들과의 시간을 즐긴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을 배웠다.
5. 대화의 깊이가 달라지다
예전에는 밤새 이야기해도 할 말이 많았다. 서로의 꿈, 미래에 대한 계획, 온갖 감정들을 쏟아냈다. 그때는 그런 대화가 친밀감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오히려 말수가 줄었지만 대화의 질이 달라졌다. 짧은 대화 속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오늘 어땠어?"라는 간단한 질문에도 서로의 하루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때로는 말없이 함께 있는 것도 편하다. 각자 책을 읽거나 TV를 보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편안함을 얻는다. 침묵도 우리만의 대화가 되었다.
6.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기
젊었을 때는 항상 미래를 계획했다. 언제 집을 살지,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킬지,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지. 늘 앞서 달려가기 바빴다.
지금은 현재에 더 집중한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다는 것,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10년 후, 20년 후보다는 오늘 저녁 뭘 먹을지, 이번 주말 어디 갈지가 더 중요하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서 다시 둘만의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우리만의 속도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의 여유로움을 배우고 있다.
7. 서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20년 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외모도 변했고, 성격도 조금씩 바뀌었고, 관심사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이런 변화가 두려웠다.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고, 나 역시 예전과는 다른 내 모습을 인정한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함께 변화해가는 것도 사랑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8. 중년 부부의 사랑
중년 부부의 사랑은 젊은 시절의 사랑과는 다르다. 덜 뜨겁지만 더 따뜻하고, 덜 자극적이지만 더 안정적이다.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편안하다.
지금 우리의 사랑은 격정적인 로맨스가 아니라 깊은 우정에 가깝다. 서로를 이해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관계.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관계.
어쩌면 이것이 진짜 사랑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화려하지 않지만 견고하고, 자극적이지 않지만 지속 가능한 사랑. 중년에 와서야 비로소 배우게 되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