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같은 영화, 다른 소비방식
2025년의 한국영화 시장은 하나의 이야기로 정의되기 어렵다. 같은 영화라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인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극장은 여전히 집단 체험의 공간이고, OTT는 일상 속 개인의 습관이 되었다. 팬데믹 이후 관객의 취향은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거대한 사운드와 공기 진동 속에서 함께 반응하는 **공유의 쾌감**, 다른 하나는 언제든 멈추고 되돌릴 수 있는 **혼자만의 몰입**이다. 이제 영화의 인기는 관객 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나’와 ‘얼마나 오래 머물렀나’**가 나란히 중요해졌다.
2. 극장: 체험을 사는 공간
2024년 극장 관객은 약 1억 2천만 명,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다. 하지만 극장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관객은 거대한 화면, 4DX 진동, 포토카드 이벤트와 GV(관객과의 대화) 같은 ‘의식’을 소비한다. 영화는 하루를 통째로 쓰는 경험이 된다. 특히 공포와 범죄물은 이 집단 체험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한다. 《파묘》와 《범죄도시4》는 각각 천만 관객을 넘기며, 극장이 만들어내는 ‘동시 반응의 전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입증했다.
극장의 인기 포인트는 **즉시성**이다. 스포일러를 피하려면 개봉 초반에 봐야 하고, 주말의 박스오피스 경쟁이 뉴스처럼 소비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 참여**이며, 관객은 티켓을 사는 동시에 ‘시간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극장 인기의 척도는 여전히 ‘순간의 열기’다.
3. OTT: 생활의 틈새를 점령하다
OTT는 같은 영화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유통시킨다.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쿠팡플레이 등은 이미 생활 플랫폼이 되었다. 광고형 요금제와 모바일 시청 확산으로 접근성이 높아졌고, 출퇴근길·점심시간·취침 전 30분이 영화 소비의 시간으로 변했다. ‘시청’이 아닌 ‘체류’가 인기를 결정짓는다.
OTT에서는 **완주율과 재시청율**이 중요하다. 즉, 한 번 끝까지 본 사람의 비율과 다시 본 횟수가 작품의 생명을 좌우한다. 극장에서 2시간짜리 서사를 한 번에 몰입해야 한다면, OTT는 30분씩 쪼개서 보거나 중간에 멈춰도 된다. 이 자유도 덕분에 로맨스, 사회극, 청춘 성장물 같은 감정 중심 장르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다. 반대로 공포나 스릴러처럼 ‘공유 반응’을 전제로 한 작품은 극장만큼 강한 반향을 만들기 어렵다.
4. 인기의 기준이 다르다
극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시에 봤는가’를 측정한다. 박스오피스 순위와 관객 수가 곧 인기를 의미한다. 반면 OTT는 ‘얼마나 오래 회자되었는가’가 중요하다. 한 번에 보지 않아도, 클립·짤·대사로 살아남으면 성공이다. 영화가 끝나도 SNS에서 재해석되고, 커뮤니티의 밈과 리뷰 속에서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예를 들어 《시민덕희》나 《다음 소희》 같은 사회극은 극장에서는 중간 규모의 성적을 냈지만, 플랫폼 공개 이후 장기적으로 꾸준한 조회를 얻었다. 반대로 《범죄도시4》 같은 대형 흥행작은 OTT에서도 재감상 콘텐츠로 인기를 이어가며 ‘극장-플랫폼 순환형 인기’를 만들고 있다. 결국 인기의 경로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순환의 형태로 바뀌었다.
5. 장르별로 달라지는 흥행의 무게
2025년 현재 극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장르는 공포·범죄·액션이다. 스케일이 크고 사운드가 중요한 작품들이 집단 체험을 이끈다. 반면 OTT에서는 감정과 일상의 리듬이 중심인 장르가 강하다. 청춘 로맨스, 사회극, 실화 기반 드라마가 조용하지만 긴 생명력으로 사랑받는다. 플랫폼은 리스크를 낮추고 다양성을 확보하기 쉬워, 중저예산 영화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극장이 속도와 자극의 공간이라면, OTT는 깊이와 체류의 공간이다.
6. 관객의 선택: 하루를 쓰는가, 하루에 얹는가
극장 관람은 하루를 통째로 쓰는 결정이다. 상영 시간에 맞춰 이동하고, 좌석을 선택하며, 팝콘 냄새와 함께 타인의 호흡을 느낀다. OTT 시청은 하루의 빈틈에 얹는 행동이다. 10분 남은 시간, 잠들기 전, 출퇴근길의 이어보기 속에서 영화가 소비된다. 전자는 ‘이벤트형 문화’이고, 후자는 ‘습관형 문화’다. 2025년의 한국영화 인기는 이 두 문화가 공존하며 만들어진다.
7. 미래의 경계: 더 짧아지는 간격
앞으로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극장 개봉작이 3~4주 안에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OTT 오리지널이 극장 시사회를 여는 흐름이 시작됐다. 대작은 여전히 극장에서, 감정 중심 서사는 플랫폼에서 1차 파급력을 만든다. 광고형 요금제와 번들 서비스 확산으로 이용자는 더 많아질 것이고, 콘텐츠는 더 빨리 회전한다. 결국 관객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택지를 전환하는 시대**에 살게 된다.
8. 결론: 다른 무대, 같은 이야기의 생명력
영화관은 여전히 ‘함께 느끼는 감동’을, OTT는 ‘반복해서 곱씹는 공감’을 판다. 하나는 체험의 장르, 다른 하나는 기억의 장르다. 2025년의 한국영화는 이 두 무대 위에서 동시에 자란다. 관객은 극장에서 심장이 뛰고, 플랫폼에서 마음이 여운을 찾는다. 그 두 가지 감정이 순환할 때, 비로소 한국영화의 생명은 스크린을 넘어 일상으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