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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의 변화로 보는 영화사 — 한국 OTT와 세계 영화가 길

by bombitai 2025. 11. 2.
본문 주인공이 일하는 법정의 모습

 

스크린 속 여성은 오랫동안 ‘구해져야 할 사람’으로 소비되곤 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캐릭터의 자리는 피해자에서 당사자, 그리고 설계자로 이동했다. 한국의 OTT 드라마와 세계 영화 몇 편을 엮어, 변화의 궤적과 감정의 언어를 따라가 본다.

1. 자아 선언 — 법정/직업 서사의 확장: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Netflix, 2022)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는 입사 첫날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이 자기소개는 ‘특별함’을 과시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이 먼저 붙는 ‘낯섦’을 본인의 언어로 통제하는 주체적 기술이다. 드라마는 한 사건의 승패보다, 회의실과 법정에서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보완하는지가 조직 문화를 바꾸는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다.

박은빈의 연기는 ‘천재서사’의 편리함에 기대지 않는다. 소음과 조명, 시간표와 문서 포맷처럼 사소해 보이는 환경이 역량을 어떻게 끌어올리는지 보여주며, 여성 전문직 캐릭터가 ‘예외적 영웅’이 아니라 ‘정상적 동료’의 범주로 확장되는 장면을 확보한다. 이 변화는 한국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를 ‘설명되어야 할 존재’에서 ‘설명하는 존재’로 옮겨 놓았다.

2. 일상의 주권 — 돌봄과 자기결정의 서사: 리틀 포레스트 (2018)

혜원(김태리)은 도시의 속도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와 제철의 밥상을 차린다. 영화는 거대한 사건 대신,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으로 삶의 리듬을 재설계한다. 김태리의 담백한 내레이션과 손의 동선은, 여성 캐릭터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관리’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요리는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자기 삶의 의사결정을 회복하는 행위다.

전통 멜로드라마의 여성들이 일상에 묶여 있었던 것과 달리, 혜원은 일상을 선택한다. ‘돌봄’은 희생의 동의어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를 건강하게 세우는 기술이 된다. 이 서사는 한국영화 속 여성의 감정선을 눈물의 정점이 아닌 회복의 곡선으로 재배치한다.

3. 신체와 의지의 주체화 — 액션/탈주의 새로운 기준: Mad Max: Fury Road (2015)

후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사막의 트럭 위에서 선언한다.

“We are not things.”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이 문장은 여성 캐릭터를 남성 영웅의 장식에서 서사의 추진력으로 이동시킨 선언문이다. 총성과 모래폭풍 속에서 후리오사와 동료 여성들은 구원이 아닌 공동 탈주를 감행한다. 중요한 건 ‘누가 더 세게 싸우는가’가 아니라, ‘누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가’다.

이 기준은 한국 작품의 여성 액션 캐릭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여성 주인공이 복수/탈주의 설계를 주도하는 장면들이 늘어났고, 신체는 대상이 아닌 결정의 도구로 재위치된다. 관객은 더 이상 ‘왜 여자가 저기 있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저 결정을 어떻게 설계했지?’를 묻게 된다.

4. 공포 장르의 전환 — 피해자에서 설계자로: The Babadook (2014)

아멜리아(에시 데이비스)는 상실의 그림자와 마주하며 결국 외친다.

“This is my house!”

이 한 줄은 공포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가 두려움의 대상에게 경계를 긋는 전환점이다. 바바둑은 ‘퇴치’가 아니라 ‘관리’의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괴물에게 먹이를 주며 지하실을 통과하는 결말은, 트라우마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비명만 지르지 않는다. 규칙을 만들고 공간을 설계한다.

이 변화는 한국의 가족/심리 서사에도 반향을 일으켰다. 어머니, 딸, 연인의 자리는 ‘보호받는 존재’에서 ‘환경을 재배치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공포·멜로·가족영화의 경계가 흐려지고, 여성 캐릭터는 장르를 초월하는 문장을 갖게 된다.

5. 시스템 속의 변화 — 한국 OTT가 만든 협업의 얼굴: 미생(tvN, 2014)·이태원 클라쓰(JTBC/Netflix, 2020)

‘미생’의 안영이(강소라)는 회의장에서 손을 든다. 그는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문제를 조정하고, 팀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낸다. 이 캐릭터는 회사 서사에서 여성 인물이 ‘공감’ 담당으로만 배치되던 관행을 넘어,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태원 클라쓰’의 조이서(김다미)는 단호하게 말한다.

“대표님, 저는 천재예요.”

맥락의 허세가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리소스를 감정이 아닌 수치로 설계하는 선언이다.

두 작품은 한국 OTT/드라마가 여성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임무를 ‘지원’에서 ‘설계’로 바꾼 사례다. 이제 여성 캐릭터는 팀의 분위기를 완화하는 역할을 넘어, 방향을 제안하고 속도를 정한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여성들은 더 이상 ‘지켜봐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일해야 할 동료’가 되었다.

 

자기소개로 장면을 장악하는 변호사, 제철의 밥상으로 하루를 재설계하는 청년, 사막에서 삶의 방향을 되찾는 전사, 트라우마와 공존의 규칙을 만든 엄마, 회의실에서 속도를 정하는 동료까지.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단일한 승리의 플래그가 아니다. 각각의 장면에서 다른 방식을 발명해 온 다섯 개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여전히 확장 중이다. 내일의 화면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문장으로, 또 다른 자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