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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자녀와 친구가 되기 - 엄마에서 조언자로

by bombitai 2025. 9. 22.

엄마와 딸의 사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밤늦게 들어오면 현관에서 기다리며 "밥 먹었니?"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엄마의 전부였고, 아이들의 모든 것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커서 저보다 키도 크고,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을 가진 어엿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큰아들이 첫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고, 작은아들도 대학생이 되면서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이끌어야 할 '아이'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존중해야 할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 변화 앞에서 저 자신도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1.엄마라는 이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20여 년간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온 저에게 이 변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습관적으로 "숙제는 했니?", "친구들과는 잘 지내니?"라고 묻다가 스스로 멈칫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아들들은 이미 자신의 일정을 스스로 관리하고, 인간관계도 독립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말이죠.

특히 큰아들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저도 모르게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해"라며 조언이라는 이름의 지시를 하려다가 멈춘 적이 있습니다. 아들의 표정에서 '엄마 때 하고는 시대가 변했잖아' 라는 마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요.

엄마라는 역할에서 조금씩 벗어난다는 것은 결코 사랑을 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성숙한 사랑의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을 믿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실패할 권리까지도 인정해주는 것.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경험해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2.친구가 된다는 것의 의미

어느 날 작은아들이 대학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제 의견을 물어왔을 때, 저는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런 거야"라는 식이 아니라, "나라면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어본 것이죠.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생각을 더 깊이 있게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평소에는 "응", "아니야" 정도로만 대답하던 아이가 자신의 고민과 감정,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동등하게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이구나 하고요.

큰아들과는 요즘 드라마 이야기도 하고, 음식 맛집 정보도 공유합니다. 가끔은 아들이 저에게 연애 상담을 하기도 해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이런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한 명의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는 이 경험이 이렇게 새롭고 따뜻할 줄 몰랐거든요.

물론 완전한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저는 아이들을 낳고 기른 엄마이고, 그들에 대한 책임감과 걱정은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그 걱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뿐입니다. 더 성숙하고, 더 지혜롭게 말이죠.

3.조언자라는 새로운 역할

엄마에서 친구로, 그리고 이제는 조언자라는 역할까지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언자는 예전의 '엄마의 조언'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을 나누고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에요.

큰아들이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저는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비슷한 경험들을 이야기해줍니다. "엄마도 젊었을 때 직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해결했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를 수 있으니까 네가 판단해서 결정해봐"라는 식으로요. 그러면 아들은 제 경험을 참고하면서도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갑니다.

작은아들이 진로 고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뭘 하고 싶니?",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니?"라고 먼저 물어봅니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후에야 제 생각을 조심스럽게 나누죠. 중요한 것은 결정권이 아이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조언은 아이들에게 더 큰 신뢰를 받는 것 같아요. 억지로 듣게 하는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 구하는 조언이 되니까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제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우리 관계가 훨씬 더 돈독해졌어요.

4.새로운 행복의 발견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저는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제 말을 잘 들을 때, 제가 원하는 대로 자랄 때 뿌듯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때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큰아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작은아들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보여줄 때, 저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잘 키웠다"는 뿌듯함을 넘어서, "저 아이들이 정말 멋진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감동을 받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의 대화가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공부는 하니?", "몸관리 잘해라" 같은 일상적인 잔소리가 대화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진짜 대화를 합니다. 아이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들으면서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들도 많아요.

가끔 아이들이 "엄마, 요즘 대화하기 너무 좋아졌어"라고 말할 때면, 이 변화가 저 혼자만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성장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엄마라는 역할에만 매몰되지 않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성장해온 시간들이 결국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족 관계를 만들어준 것이죠.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것을 바라보며 때로는 아쉽고 때로는 뿌듯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변화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엄마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조언자로, 그리고 앞으로는 또 어떤 역할로 발전해 나갈지 기대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우리도 함께 성장해야 하고, 그들을 놓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럴 때 비로소 더 깊고 성숙한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웃고,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찾은 새로운 행복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