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잔소리가 사랑이었다는 것
"공부해라", "일찍 자라", "친구들 함부로 사귀지 마라" - 어릴 때는 엄마의 잔소리가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왜 내 일에 그렇게 간섭하는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만 믿고 살아라"고 하시면서도 끝없이 걱정하시는 엄마가 답답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 모든 잔소리 뒤에 숨어있던 사랑을. 아이가 밤늦게 들어오면 불안해하고, 친구 관계로 고민하면 내 일처럼 걱정되는 마음을. 좋은 것만 주고 싶고, 힘든 일은 대신 겪어주고 싶은 간절함을.
지금 내 아이에게 "숙제했니?", "핸드폰 그만 봐라"라고 말하면서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엄마가 나에게 했던 그 마음이었구나.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말이 많아지는 거였구나.
2. 돈의 소중함을 가르치려던 아버지
아버지는 용돈을 주실 때마다 긴 얘기를 하셨다. "돈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한다", "함부로 쓰지 말아라", "저축하는 습관을 길러라". 그때는 그냥 잔소리로 들렸다. 친구들 부모님은 그냥 주시는데 우리 아버지만 유독 까다로우신다고 생각했다.
학용품을 사달라고 하면 "정말 필요한 거냐?"고 물으시고, 옷을 사달라고 하면 "입을 만한 게 있지 않냐?"고 되물으셨다. 다른 집 아이들보다 용돈도 적었고, 갖고 싶은 것도 쉽게 사주지 않으셨다.
지금 내가 아이 용돈을 주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인색해서가 아니라, 돈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는 것, 절약하는 습관이 평생 재산이라는 것을 가르치려 하셨던 것이다.
지금 나 역시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정말 필요한 거야?", "집에 있는 걸로 쓸 수 없을까?"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3. 공부하라는 말의 진짜 의미
"공부해야 나중에 후회 안 한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하려고 그래?" 학창시절 내내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공부가 전부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공부보다 재미있는 것도 많고, 중요한 것도 많은데 왜 공부만 강요하시는지 몰랐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학원에 보내고, TV를 보고 싶은데 책상 앞에 앉히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요"라고 대들기도 했다.
내 아이가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고 할 때 이해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하신 것은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그때 공부를 더 할 걸" 하고 후회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지금 나도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한다. "지금 힘들어도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아진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엄마도 너처럼 공부하기 싫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더라"고.
4. 집안일을 시키시던 이유
설거지, 청소, 빨래 개기. 부모님은 집안일을 시키시는 걸 좋아하셨다.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나중에 혼자 살 때 필요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때는 왜 나만 일을 시키는지, 왜 편하게 놔두지 않는지 불만이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그 집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만 유독 까다로운 것 같았다. "저는 공부하느라 바쁘다고요"라고 투덜거리며 억지로 하곤 했다.
지금 내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키면서 깨닫는다. 부모님은 나를 힘들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독립적인 사람으로 키우려 하셨던 것이다.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는 능력, 가족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르치려 하셨던 것이다.
아이가 "왜 나만 시켜요?"라고 불평할 때마다 나는 웃는다. 내가 어릴 때 했던 똑같은 말이니까. 그리고 부모님처럼 대답한다.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나중에 고마워할 거야."
5. 친구 관계를 걱정하시던 마음
"그 친구는 어떤 아이야?", "집은 어디 사니?", "부모님은 뭘 하시는 분이야?" 친구와 놀러 간다고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들이었다. 그때는 친구 하나 사귀는 것도 간섭하시는 부모님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신중하게 사귀어야 한다", "나쁜 친구 만나면 너도 나빠진다"는 말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인데 뭐가 나쁘고 좋고가 있을까 싶었다. 내가 판단할 일인데 왜 부모님이 걱정하시는지 몰랐다.
내 아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야? 어디서 만났어?" 그리고 이해했다. 부모는 아이의 친구 관계가 그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좋은 친구를 만나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와 어울리면 아이가 힘들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교우 관계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6.건강을 챙기라던 말의 무게
"감기 조심해라", "밥 굶지 마라",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 집을 나설 때마다 들었던 당부였다. 그때는 그냥 습관적으로 하시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젊으니까 뭘 그렇게 걱정하시나 싶었다.
몸이 아프다 고 하면 부모님이 더 아픈 표정을 하시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감기인데 부모님이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가자고 하시는 것도, 약을 챙겨주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가 열이 날 때, 그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알았다. 아이가 아프면 정말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감기에도 밤잠을 설치게 되고, 괜찮아질 때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감기 조심해"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부모의 마음. 그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아프지 마라, 건강해라'는 간절한 기도였던 것이다.
7. 이제야 알게 된 부모의 마음
50대가 되어 돌아보니, 부모님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과했지만, 그 모든 것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젊을 때는 부모님이 나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세상을 믿지 못하셨던 것이다. 내가 세상의 험한 것들로부터 다치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지금 나 역시 내 아이에게 같은 마음이다. 걱정하고, 잔소리하고, 간섭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것이 부모의 숙명이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구나.
이제야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많은 걱정과 잔소리, 때로는 서툰 사랑 표현들이 모두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였다는 것을.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