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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 — ‘함께 산다’는 마음을 일깨운 영화들

by bombitai 2025. 10. 20.
개와 고양이 사진

 

때로 영화는 동물을 통해 인간을 비춘다. 스크린 속 동물의 눈빛, 숨소리, 몸짓은 우리 안의 다정함과 책임, 그리고 공존이라는 단어를 천천히 떠올리게 만든다. 한국 영화(및 한국 제작)의 작품들 가운데, 동물이 이야기의 심장으로 뛰는 다섯 편을 골랐다. 한 마리 슈퍼피그를 지키려는 소녀, 자유를 향해 달리는 유기견들, 세상으로 걸어 나온 암탉과 외따로 자란 새끼, 동물이 사라진 동물원을 살리려는 사람들, 그리고 반려동물과 인간이 함께 배우는 인사말까지. 장르와 형식은 달라도 이들이 건네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진실.

1. 거대한 친구를 지키는 작은 용기 — <옥자>

주인공은 미자(안서현). 한국의 산골에서 자란 소녀는, 가족처럼 돌봐온 슈퍼피그 옥자를 빼앗기고서야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움직이는지 깨닫는다. 거대 기업의 홍보 영상, 화려한 쇼 무대, 번쩍이는 실험실 사이에서 미자가 붙잡는 것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오직 옥자에게 달려가 부르는 이름, 그 두 글자다.

옥자!

그 한마디가 도망치는 발걸음의 리듬이 되고, 좁은 골목과 숲길, 고가도로와 도심을 잇는 비상구가 된다.

이 영화의 감동 포인트는 관계의 호명에 있다. 거대한 윤리나 제도보다 먼저, 이름을 불러 서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일. 미자가 손을 내밀 때 관객은 안다. 보호란 우월함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옥자의 온기와 무게, 미자의 걸음과 숨은 스크린을 넘어 우리 몸의 체온으로 옮겨 붙는다. 그래서 《옥자》는 환경이나 동물권에 대한 거창한 논리 없이도 마음을 설득한다. “소중한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인지, 소녀가 몸으로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2. 울타리 밖으로 나온 삶 — <마당을 나온 암탉>

암탉 잎싹(문소리, 목소리 연기)은 축사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다. 그 앞에 펼쳐진 것은 아름답기만 한 자연이 아니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약육강식의 규칙. 잎싹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더 크게, 더 분명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되뇌인다. 그렇게 만난 새끼 초록이(유승호, 목소리 연기). 종도 다르고 피도 이어지지 않았지만, 잎싹은 그를 ‘아이’로 받아들이고 지켜 낸다. 어미의 시선으로 본 세계는 낭만보다 책임에 가깝다.

이 작품의 감동 포인트는 돌봄의 결심이다. 잎싹은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아이가 날아오를 순간만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작은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물가에 데려가 먹이를 찾는 법을 가르치고, 위험을 감지하면 날개를 펴 그늘을 만든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한 생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이 오래 붙잡는 장면은 바로 그 마음의 온도다.

3. 함께 달려야 도착하는 곳 — <언더독>

버려진 개들이 무리를 이루어 길을 찾는다. 뭉치(도경수), 밤이(박소담), 짱아(박철민, 모두 목소리 연기). 사람에게 길들여져 있던 발과 마음은 자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만 헛디딘다. 하지만 길 위에서 배운다. 물을 찾는 방법, 위험을 피하는 방법,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는 방법. 강한 한 마리보다 믿을 수 있는 여러 마리가 더 멀리 간다는 사실을.

《언더독》의 감동 포인트는 공동체의 회복력이다. 누군가 넘어지면 다른 누군가가 멈춰 서고, 가장 약한 대열의 속도에 맞추어 무리가 움직인다. 그 리듬이 생존의 조건이자 자유의 매뉴얼이 된다. 영화는 표어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눈높이를 낮춰, 숲과 강, 하늘의 높이를 스스로 배워가는 시간을 보여 준다. 관객은 어느새 그 무리에 마음을 얹고, 함께 달리며 숨이 찬다.

4. 비어 있는 우리를 채운 마음 — <해치지 않아>

동물 없는 동물원. 새로 부임한 변호사 태수(안재홍)는 망해 가는 시설을 살리기 위해 엉뚱한 제안을 한다. 직원들이 동물옷을 입고 ‘동물’을 대신하자는 것. 얼핏 우스워 보이는 아이디어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낳는다. 사람들은 ‘짐승 흉내’를 내다가, 동물의 동선과 습성, 관객의 시선과 불편을 배우기 시작한다. 비어 있던 우리에는 노력이, 조롱 섞인 외침 대신에는 웃음과 응원이 조금씩 쌓인다.

감동 포인트는 상상력의 방향이다. 진짜가 없으니 흉내라도 내 보자는 발상은 결국 진짜에게 필요한 것을 묻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공간이 무엇을 품어야 ‘살아 있는 장소’가 되는지, 제도와 이익의 언어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칸이 무엇인지. 영화는 유쾌함을 앞세우지만, 끝내 남는 것은 생명과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5. 네가 있어서 배운 인사 — <미안해, 고마워>

네 편의 옴니버스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문장을 연습한다. ‘미안해’와 ‘고마워’. 길에서 마주친 개와 눈을 맞추는 일, 가족이라 부르던 고양이와 이별하는 일, 나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는 일, 그리고 돌봄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 이 영화의 인물들은 동물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의 언어를 배운다. 그 언어는 서툴지만 정직해서, 가난 속에서도 깊은 연대를 만들어 낸다.

감동 포인트는 함께 견디는 시간이다. 화려한 사건 대신, 앞발과 뒷발로 바닥을 딛는 소리, 꼬리가 느릿하게 흔들리는 속도,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을 오래 비춘다. 작은 표정 하나에도 삶의 무게가 스며 있고, 그 무게를 나눠 들 때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는 걸 담담히 보여 준다. 그래서 제목 그대로, 영화를 보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사는 결국 두 마디뿐이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6. 엔딩 노트 — 이름을 부르면, 존재가 된다

동물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영화들은 공통의 문장을 남긴다. 이름을 부르면 존재가 된다. 《옥자》의 미자가 외친 짧은 호명, 《암탉》의 잎싹이 건넨 느린 돌봄, 《언더독》의 무리가 만든 속도, 《해치지 않아》의 사람들이 배우게 된 시선, 《미안해, 고마워》의 인사까지. 우리는 스크린에서 배운 그대로, 내 곁의 생명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함께 산다는 일은 위대하지 않아도 매일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속으로라도 한 번 불러 보자. 이름을. 그리고 천천히 대답해 보자.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