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의미하는 것을, 어머니가 식탁에서 반찬만 드시던 이유를.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얼마나 큰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셨습니다. 그 희생과 인내의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배웠습니다.
1.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던 땀
아버지는 새벽 일찍 집을 나서셨고, 밤늦게 돌아오셨습니다. 어린 저는 그저 아빠가 회사에 가신다고만 알았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야근하던 밤들,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날들, 자존심을 구기며 고개를 숙여야 했던 순간들을.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견디시며 가족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항상 거칠었습니다.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느라 늘 부지런히 움직이던 그 손. 어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 "피곤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쉼 없이 일하시면서도 늘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꿈이 있으셨을 텐데,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셨을 텐데... 모든 것을 미루고 우리를 위해 살아오셨습니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것을 포기하며 사셨습니다. 새 옷 한 벌 사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드시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모두 뒤로 미루시고 자식들에게 더 나은 것을 주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그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2.말없이 보여주신 삶의 가치들
부모님 세대는 말로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삶으로 보여주셨죠. 아버지의 성실함은 어떤 교훈보다 강력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약속은 지키시고,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시는 모습. 그것이 바로 '어른'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쉬운 길,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묵묵히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절약의 미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쌀 한 톨도 아까워하시고, 남은 반찬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요리로 만들어내시던 모습.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아끼실까" 싶었지만, 지금은 압니다. 그것이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부모님은 가족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저녁 식사만큼은 함께하려고 애쓰셨고,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도록 애쓰셨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 의미를 이제야 깊이 이해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가족만큼은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는 것, 서로를 의지하고 보듬어야 한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3.늦게나마 깨닫는 감사함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더 보입니다. 제가 부모가 되고 나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걱정과 불안, 책임감... 이 모든 것을 부모님도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밤새 아픈 아이를 돌보며 잠 못 이루던 밤들, 아이의 작은 상처에도 가슴 졸이던 순간들, 미래를 걱정하며 밤늦게까지 고민하던 시간들... 부모님도 저를 위해 그렇게 애태우셨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사춘기 때 부모님께 했던 짜증, 대학 시절 용돈을 물 쓰듯 쓰면서도 당연하게 여겼던 마음, 결혼하고 나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시간들... 그때는 몰랐지만 부모님은 얼마나 서운하셨을까요. 얼마나 기다리셨을까요. 이제는 전화 한 통, 방문 한 번이 부모님께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압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더 자주 전화 드리고, 더 자주 찾아뵙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함께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4.이어가야 할 소중한 유산
부모님 세대의 희생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부모님이 보여주신 성실함, 절약, 가족애, 정직함... 이 모든 가치들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고,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줘야 할 보물들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도 이 가치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우리 가족을 일궈오셨는지,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희생에 감사하며, 그 가치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희생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당신들이 보여주신 삶의 가치들을 잊지 않고 잘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늘 표현하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