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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오르다 느낀 숨, 그리고 멈춤의 지혜

by bombitai 2025. 10. 8.

계단 산책길

1. 계단에서 마주한 몸의 신호

동네 육교의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차 멈춰 선 순간, 나는 나이 듦을 실감했다. 예전 같으면 단숨에 오를 수 있었던 계단이 이제는 내 호흡을 끊어 놓는다. 처음엔 당혹감이 몰려왔지만, 곧 마음이 가라앉았다. 숨이 찬다는 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였고, 멈춘다는 건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행위였다.

50대의 삶은 계단 오르기와 닮아 있다. 젊을 때는 앞만 보고 달리며 “조금만 더, 끝까지”를 외쳤지만,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을 존중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더 큰 용기라는 걸 알게 된다. 숨이 가빠오는 순간은 뒤처짐이 아니라, 멈춤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2. 멈춤이 보여주는 풍경과 관계의 진실

계단 중간에 서서 숨을 고르다 보면 의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아이 손을 잡은 부모의 모습, 난간을 짚고 천천히 오르는 노인의 뒷모습.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앞만 보며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멈춤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삶도 마찬가지다. 늘 속도를 내며 달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가족의 짧은 인사, 동료가 건네는 가벼운 농담, 길가의 작은 꽃 한 송이가 멈춤 속에서야 비로소 마음에 들어온다.

멈춤은 관계를 되새기게도 한다. 부모님과 함께 걸을 때 나는 이제 천천히 발걸음을 맞춘다. “왜 이렇게 느리게 가시나”라는 조급함 대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부모님의 호흡을 느끼며 기다려 드린다. 그러면 어린 시절, 내 느린 걸음을 맞춰 주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요즘은 오히려 아이들이 내 속도를 기다려 준다. “엄마, 괜찮아? 조금 쉬었다 가자”라는 말 속에서 세대가 이어지는 따뜻함을 느낀다. 계단의 멈춤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다리이자 관계의 온기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3. 숨 고르기의 의미, 삶의 리듬을 배우다

계단을 오르다 숨이 가빠오는 건 내 몸이 약해진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삶의 무게를 확인하는 경험이다. 일과 가족, 관계와 책임을 짊어지고 달려온 세월이 내 호흡 속에 스며 있다. 그러나 멈춤은 그 무게를 내려놓는 작은 연습이 된다.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자기 위로가 숨 고르기 속에서 싹튼다.

계단은 내게 삶의 리듬을 알려 준다. 너무 빨리 오르면 넘어지고, 너무 느리게 가면 흐름을 잃는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호흡을 찾는 일이다. 50대의 삶도 그렇다.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 날의 속도 대신, 숨이 차면 멈추고, 다시 힘을 내어 오르는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내 몸과 마음을 오래 지탱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리듬은 단지 개인적인 삶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타인과 함께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숨이 차 멈춰 있을 때, 그 옆에 잠시 함께 서 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긴 여정에서 가장 큰 배려이자 동행의 방식이다. 멈춤을 경험한 사람만이 멈춤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가 관계를 더 깊게 만든다.

4. 오늘의 계단이 알려주는 내일의 지혜

나는 이제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차 멈추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안전장치라는 걸 안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다시 갈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과정이다. 그 짧은 숨 고르기가 앞으로 더 오래, 더 멀리 걸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수많은 계단이 있을 것이다. 어떤 계단은 더 가파르고, 어떤 계단은 길게 이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잠시 멈출 것이다. 그리고 멈춘 자리에서 주변을 바라보고, 관계를 돌아보고, 다시 내 리듬으로 한 발 내디딜 것이다. 계단에서 배운 이 작은 지혜가 내 인생 2막을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