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언제부터였을까, 거울 보기가 낯설어진 것이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화장대 앞에 섰다가 깜짝 놀랐다. 거울 속에 누군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인 줄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인 줄 알면서도 '이게 정말 나야?'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거울을 보는 것이 이렇게 낯설어진 것이. 20대, 30대, 심지어 40대까지도 거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어보고, 헤어스타일을 바꿔보며 거울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거울 속의 나는 예측 가능했고, 통제 가능했다.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 거울 속의 나는 때때로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눈가에 생긴 잔주름들, 입꼬리 주변의 깊어진 선들, 목에 생긴 가로줄들. 언제 이런 것들이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느껴진다.
“안녕, 낯선 나야.”
거울을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이상하게도 이 인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솔직한 인정 같다. 그래, 너는 내가 예상했던 50대의 나와는 조금 다르다. 더 늙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더 지쳐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것도 보인다. 젊었을 때는 없던 깊이 같은 것이 눈에서 느껴진다. 많은 것을 겪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눈빛 말이다.
2.어머니의 얼굴을 찾아가는 여행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보면 신기한 발견을 하게 된다. 어느 각도에서 보면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웃을 때 눈가에 생기는 주름의 패턴이나, 진지한 표정을 지을 때 입 모양이 어머니와 닮아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내가 어머니를 닮아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젊었을 때는 '나는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 될 거야'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얼굴 속에서 내가 물려받은 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 같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를 내 얼굴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다.
같은 나이를 겪어가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가족 걱정을 많이 했는지, 왜 항상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는지, 왜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했는지.
거울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떤 연결고리 같은 것 말이다.
3.변화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방식
처음에는 거울 속 변화된 내 모습을 부정하려 했다. 더 밝은 조명 아래서 보기도 하고, 각도를 바꿔보기도 하고, 화장으로 가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거울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숨기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 컨디션이 좋네.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아.”
“오늘은 좀 피곤해 보이는데, 일찍 자야겠다.”
“이 색깔 립스틱이 내 피부 톤이랑 잘 어울리네.”
예전처럼 '젊어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나이에 맞는 우아함이란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20대처럼 꾸미는 것보다, 50대의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화장품을 고를 때도 기준이 바뀌었다. '얼마나 젊어 보이게 해주는가'보다는 '얼마나 건강해 보이게 해주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피부에 생기를 주는 제품, 자연스러운 윤기를 주는 제품들을 선호한다.
옷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내 체형과 피부색에 어울리는 것, 편안하면서도 품위 있는 것들을 고른다. 거울 앞에서 "이 옷을 입은 내가 자신감 있어 보이나?"라고 자문한다.
가장 큰 변화는 거울을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거울 앞에서 한참을 보내며 이것저것 고치려 했다면, 지금은 필요한 것만 하고 거울에서 떨어진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4.거울 너머의 진짜 나를 만나다
요즘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거울이 외모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울을 통해 내 마음 상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눈썹이 찌푸려지고, 입술이 굳어지고, 전체적으로 경직된 표정이 된다. 반대로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할 때는 얼굴 전체가 부드러워진다. 눈에 웃음기가 돌고,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오늘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
거울을 보며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거울 속 내 표정에서 답을 찾는다. 때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보다 더 밝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발견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돌보게 되었다. 거울에서 피로한 모습을 보면 일정을 조정해서 휴식을 취한다. 스트레스받은 표정을 보면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보고 해결 방법을 찾는다.
거울은 이제 단순히 외모를 확인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와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있는 날 아침에는 거울을 보며 "오늘 하루 잘 부탁해"라고 인사한다. 힘든 하루가 끝나고 저녁에는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격려한다.
50년 넘게 함께한 내 얼굴, 내 몸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생겼다. 이 얼굴로 얼마나 많은 웃음을 지었을까, 이 눈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았을까, 이 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랑의 말들을 했을까.
주름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있다. 웃을 때 생기는 눈가 주름은 행복했던 순간들의 흔적이고, 미간의 주름은 고민하고 집중했던 시간들의 증거다. 이런 주름들을 지우고 싶다기보다는, 이런 주름들을 만들어낸 내 인생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5.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안녕, 50대의 나야. 오늘도 만나서 반가워.”
요즘 거울을 볼 때면 이렇게 인사한다.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다. 내가 되어가고 있는 사람, 내가 선택한 삶의 결과물인 사람이다.
젊을 때의 아름다움이 완벽함에 있었다면, 지금의 아름다움은 진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식 없는 표정, 자연스러운 미소, 깊이 있는 눈빛. 이런 것들은 나이가 들면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거울을 통해 나는 나이듦이 단순히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물론 잃는 것들도 있지만, 동시에 얻는 것들도 많다. 젊을 때는 없던 여유로움, 깊이, 포용력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거울은 나의 친구다. 솔직한 친구, 변하지 않는 친구.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대로 보여주고,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기다려주는 친구.
오늘도 거울 앞에 서서 생각한다. 10년 후, 2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까?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처럼 거울 속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듦이란 결국 자신과 더 깊이 친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거울은 우리에게 외모의 변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새겨넣은 이야기들, 삶이 남긴 흔적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함을 보여준다.